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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서 시작하는 영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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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 Top-story 작성일22-09-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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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7.]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영재교육 



류지영  

KAIST 과학영재교육연구원 연구교수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공개수업을 간 적이 있다. 교실에 들어섰을 때부터 열중쉬어 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심기가 불편했다. 그날 공개수업은 시의 해설을 다룬 국어 수업이었다. 부모들이 뒤에 앉아 있으니 아이도 교사도 긴장했을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시를 한 줄 읽어 주고는 글쓴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본다. 아이 몇 명이 손을 들어서 자기 생각을 말한다. 교사는 아이들의 대답에 아직 원하는 답이 안 나왔다고 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답을 계속 듣는다. 결국 한 아이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렇게 말한다. “OO가 내가 딱 원하는 답을 잘 말했어요.”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담은 시를 해석하는 데 다양한 아이들의 의견은 무시되고 처음부터 정답을 정해놓은 교사는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이 장면을 본 아이들은 시의 해석에는 정답이 있고, 교사가 생각하고 있는 그 정답에 맞춰 내 느낌과 생각을 맞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시인이 표현하려 했던 의도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는 그것을 단답형 정답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면서 시인의 마음과 생각을 유추해 보는 과정이 주어졌어야 했다. 개별 학생의 역량함양이 중요하다고 강조되는 21세기 교실에서 21세기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방식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무르고 있다.


  수학이라고 다를까? 한국의 수학교육은 한 문제라도 더 정답을 맞히기 위해 문제를 많이 푸는 연습을 하고, 풀이법을 암기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사진 1] 허준이 교수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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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인 허준이 교수는 대학교 4학년 때에 가서야 수학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았다고 알려져 있다. 학창 시절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수학에 크게 정을 못 붙였다. 하지만 게임이나 퍼즐 등 논리적 사고력이 필요한 문제에는 끌렸었다고 한다.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좀 더 일찍 수학에 집중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걸어온 구불구불한 길이 적어도 자신에게는 최적의 경로였다고 말하였다. 


  또한 “수학 머리는 타고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것은 능력 차이라기보다는 ‘취향의 밀도’ 차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말 이것을 사랑한다는 강렬한 끌림을 느끼는 사람이 그 분야를 특화해 계발하는 과정에서 천재가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였다. 어떤 분야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 그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계발된다는 말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정답을 더 빨리 많이 맞혀야만 하는 지금의 평가방식에서 과연 학생들이 수학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라도 강렬한 끌림을 느낄 수 있을까? 


  역량보다 성적을 강조하는 교육문화와 결과 위주의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정작 잠재력 있는 수학영재는 자신의 호기심과 흥미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굽은 길을 걸어가게 했던 우리 교육의 모습을 반성해 본다. 


[사진 2]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와 허준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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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에게 수학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도 그의 책 ‘학문의 즐거움’에서 입시를 위해 문제를 단시간에 푸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은 불행하고 불완전한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오랜 시간 숙고하는 사고방식을 길러 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생들이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알아내는 쾌감과 만족감을 맛보게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하였다. 


  우리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인 TIMMS에서 매번 매우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 TIMSS 2019에서 우리나라 초등 4학년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는 세계 3위, 과학성취도는 2위, 중학 2학년의 수학과 과학 성취도는 각각 3위와 4위로 세계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정답 위주의 학습 효과가 단기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보이게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은 거의 꼴찌이거나 꼴찌에 가까운 수준이다. 당장의 성적에 급급한 교육을 지향하다 보니, 성적은 그럭저럭 나올지 몰라도 흥미는 점점 떨어지고 자신감도 사라져서 스스로를 수포자라 일컫는 학생들은 늘어가고 있다. 


[표 1] 한국 학생들의 수학 과학에 대한 태도 419aec027d88c6661bdc81f30f34a3d9_1664265993_970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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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수학이나 과학에 관심이 있고 더 알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취향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그 방법을 공립교육에서 실시하는 영재학급이나 영재교육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영재교육은 올해로 20년을 맞이하고 있다. 2002년에 교육 진흥법 시행령이 공포되면서 2003년부터 공립학교에 영재학급이 설치되었으니, 당시 초등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은 이제 30대 초반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현재도 매년 8만여 명의 영재학생들이 전국 1,700여 군데의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에서 교육을 제공받고 있다. 영재학급은 일반 교실의 수업에서 충족할 수 없는 영재들의 지적인 호기심과 도전 정신을 채워 주고 나와 같은 관심을 가진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영재들의 놀이터이자 영재랜드다. 영재교사들은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거나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을 위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에 출발점을 두고 교육을 시작한다. 영재학급에서는 과학영재들의 호기심과 동기를 바탕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양한 학습콘텐츠와 전략으로 해결함으로써 학생들의 창의력,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력, 의사소통 등의 역량을 높이고자 노력한다. 세상이 궁금한 어린 영재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창의적이고 멀리 내다보는 도전적인 영재들의 엉뚱한 시도가 격려 받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영재학급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사진 3] 영재 캠프 활동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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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세상’에 아직 완전히 갇히지 않은 어린 과학영재들은 세상에 궁금한 것들이 많다. 이들은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해 보고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그들의 호기심은 또 다른 궁금증을 낳고 그 문제에 집중하면서 스스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큰 재미를 느낀다. 아인슈타인도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 다만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 이유가 있다.”고 말하였다. 실제로 그의 어린 시절을 보면 암기 위주의 교육에는 손사래를 쳤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매우 강해서 궁금한 게 생기면 그 비밀을 알아낼 때까지 몰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 곧 10월이다. 10월 초가 되면 매년 노벨상을 발표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머리 좋은 한국 사람들이 왜 노벨상을 못 받느냐고 할 것이고, 이웃 나라의 경우를 들고 와서 비교할 것이고,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와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여러 이유를 찾으려 할 것이다. 우리가 또 다른 필즈상, 노벨상 수상자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궁금한 어린 과학영재들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상과 메달을 받기 위해 영재교육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하나씩 알아가는 가운데 자신에게 재미있는 일을 찾고 나와 비슷한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서 함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잠재력과 재능을 키워가다 보면 그 결과로 상이나 메달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상과 메달을 못 받을 수도 있지만 원래 목적이 아니기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궁금한 것을 찾아 해결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데 일조했다는 것만으로도 과학영재들은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허준이 교수가 걸어온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어린 과학영재가 있을지 모른다. 이제 더 이상 그 길을 혼자 외롭게 걸어가지 않도록 영재교육을 비롯한 우리 교육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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