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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영재 교육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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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 Top-story 작성일22-12-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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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7.]

[본 글은 지난 11월 5일 한국영재학회 설립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으로 김종득 KAIST 명예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편집하였다.]



한국 과학영재 교육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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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득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1)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과학영재 교육은 어떤 단계를 밟아 발전해 왔을까? 사회적·교육적 이슈들로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한국과학원(1971), 과학고(1983), 영재학교(2002)의 설립을 기점으로 재설정되어 온 점이 흥미롭다. 

1단계(과학인재)는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산업인력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한국과학원을 설립하고 고급 과학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2단계(변화와 실험)는 사교육을 줄이고자 평준화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우수 인재 육성을 위하여 과학고를 설립하고 조기졸업제도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기에 일어났다. 3단계(제도화)는 다시 과학고가 대학입시에 휘둘리자 영재교육진흥법이 완성되면서 영재학교와 과학영재교육을 지원할 연구원을 설치하고 영재교육의 내실을 꾀하게 되는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과학영재교육의 그 자세한 발자취를 알아보자. 


 한국 과학영재교육 30년 -김종득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우리나라에서 영재교육은 영재 교육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수요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시작되었다. 전문교육이 부족했던 당시에 과학영재들을 과학기술 인재로 신속하게 키워내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2) 정부는 초·중등 교육보다 대학원 교육에 우선권을 주었다. 고급 과학기술인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과학인재가 필요하다 -과학원 설립 50주년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사업(1962-7) 기간에 과학기술처를 설립하였고3) 한미정상회담4),5)에서 베트남전 참전6)과 KIST 설립7)이 합의하여 국내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2차 경제개발 사업(1967-71) 기간에 산업에서 중화학 분야가 증대하여 고급과학기술인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정부는 한미 고급과학기술인력양성사업을 약정하였다.8) 1969년 1월 정근모 박사는 USAID 처장인 A. Hannah를 만나 한국에 대학원 설립을 건의하였고 USAID는 그의 제안을 바탕으로 한국 정부의 의향을 타진한다. 미국의 이러한 적극성은 당시 한미정상회담에서 정치적으로 합의된 지원정책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1970년 4월에 특수대학원 설립안이 대통령 경제 동향 보고회에 보고되었고 대통령은 별도 대학원 설립을 반대한 교육부가 아니라 과학기술처에서 준비하라고 한다. 이어 한국 정부가 인재양성을 위하여 USAID에 교육차관을 신청하자9) 7월 당시 스탠포드 부총장이던 F. Terman을 중심으로 한 조사단10)이 방한하여 12월에 목적, 운영, 규모에 대한 보고서를 내었고 이 보고서가 한국과학원11)의 기초가 되었다. 이듬해 초에 초대원장 이상수 교수를 비롯, 김호기, 조병하 교수 등을 유치하고 구체안을 기획하여12) 외국으로 유출되는 과학두뇌를 자체적으로 교육하여 산업발전에 활용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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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와 실험 -평준화 정책에서 피어난 과학고  


  1968년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제와 대학입학 예비고사제를 시행하였다. 중학교 무시험은 어린이들의 신체적 발달, 초등교육의 정성화, 사교육비 경감, 학교간 서열 해소라는 장점이 있어 큰 문제는 없었지만, 당시 대학입학예비고사는 대학별 선발 고사와 같은 이중입시를 거쳐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고등교육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정부는 고교 평준화 정책(1973), 실험 대학제(1973), 교수 재임용제(1975)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초중고 교육의 평준화 정책이 우수학생들의 교육부재와 전체적인 학력 저하로 이어지자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영재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 ‘과학영재교육’은 교육제도로 들어오게 된다. 1977년 제4차 경제개발 정책은 기술집약적 산업을 선택하면서 대량의 고급두뇌 양성이 요구되었고 이때 한국과학원은 급격히 확대 추진되었다.


 1982년 2월 문교부는 <영재교육 종합 수행 방안>을 발표하고 과학고 설립을 건의하여 1983년 3월 경기과학고에 첫 신입생의 입학을 허가함으로써 과학고 영재교육이 시작되었다.13)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추진된 후 경기과학고가 설립되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이다.


 조기졸업  


  1983년 4월에는 과학기술원은 <과학기술영재 양성을 위한 교육체재 확립에 관한 연구>14)로 대덕 캠퍼스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갖는 거대한 영재학교를 설립 계획을 세웠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1984년 여름에 ‘영재 학생들을 위한 하계캠프’를 실시하였고,15) 병역특례법 개정으로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연계체제를 구축하였다. 문교부는 실험적인 소규모 과학고를 설립하였고 노동부의 산업기술대학이 별도로 추진되었으나 1984년 2월 정부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으로 통합하여 운영하여, 과학고와 과학기술대학에 조기졸업제도를 도입이라는 방안으로 발전한다. 


 한국과학기술대학(KIT 이하 과기대, 현 KAIST)은 1986년 3월 경기과학고 3학년과 조기졸업 2학년생을 선발하여 학사과정 입학을 시작하였다. 이즈음 과기대에 과학영재연구소가 설치되었다. 교육자 간의 학술교류와 영재교육의 토대를 심화하기 위하여 한국영재학회가 1991년 설립되었고16) 곧 과기부 산하의 한국영재학회로 발전하였다. 1994년에는 제3회 아시아-태평양 영재학술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문교부는 한국교육개발원(KEDI)에 영재교육연구실을 설치하였고, 1994년에는 교육법에 조기 졸업과 조기입학을 허용하였다.17)


 영재교육연구소  


 1992년 KAIST는 폐쇄되었던 영재교육연구소를 다시 설치하였고, 1996년에는 교육부로부터 영재교육센터를 지정받아 영재판별 도구와 자료를 개발하였다. 1997년에 과학기술부는 대학 부설 과학영재교육센터를 설치 운영하기 시작하였다.18) 이에 과학영재교육센터, 과학고, 한국과학기술원19)을 중심으로 과학고-과기대-과학원이라는 과학영재 교육체재가 완성된다. 


 이때 과기대는 무학년20) 무학과21) 입시제를 도입하였다. 과학고의 파행교육을 극복하기 위하여 무시험 입학제를 추진하면서 생활기록부와 면접으로 선발하였다.22) 일반대학에서는 1995년 본고사가 금지되고 1997년부터는 수시모집이 실시되었고 수학능력시험과 학생부 종합전형, 교과전형, 논술전형, 특기자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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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재교육진흥법  


 1999년 12월 28일 영재교육진흥법이 통과되었다.23) 이는 미국의 영재교육이 승인된 지 10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과학기술부24)는 한국영재학교의 설립과 영재학교의 운영 지원을 위해 KAIST에 과학영재교육연구원을 설치하였다. 이후 서울과학고가 2009년, 경기과학고가 2010년, 대구과학고가 2011년, 광주과고, 대전과학고는 2014년, 그리고 세종예술과학과 인천예술과학고가 영재학교로 설치되었다.


 또한 KAIST에는 사이버과학영재교육원이 생겨 전국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사이버상에서 일반 고등학교 1학년 교과 내용보다 심화된 수준으로 수학, 과학, 정보 교육을 하고 여름 및 겨울학기 캠프를 운영하게 되었다 


 과학기술부는 과학영재교육추진위원회를 운영하여 영재학교의 설치, 영재교육원 활성화, 과학영재교육연구원을 설치하고 지원하였다. 영재학교에 선심위원회를 두고 입시, 학사운영, 졸업에 대한 제반 사항을 의결하도록 하였다. 2003년에 한국영재학교가 개교하면서, 학점제 도입, 3단계 입시제도의 도입, 대학 학점 선수 학습제 도입, R&E 제도 도입 등 과학영재들의 연구실험기회를 확대하는 혁신적인 학교가 되었다.


 대학부설 영재교육원 설립  


 영재교육진흥법 제8조에는 시도 교육청, 국공립연구소, 정부출연기관 등 공익법인은 영재교육원을 설치 운영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오늘날 영재교육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도 교육청 직속 영재교육원, 교육지원청이나 대학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원은 수학, 과학이나 수학과 과학의 융합, 정보보호25), 발명과 기업 관련 영재교육26), 국어, 영어, 문예 창작, 소프트웨어 교육27) 등을 진행하며 음악과 미술 영재원도 있다.


 정부는 1995년 과학영재교육센터의 설치와 운영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전국 9개 대학에 과학영재교육원을 지정 설치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28) 이후 과학재단은 8개의 영재교육원을 추가로 지정하고 운영하였고 중고생들이 과학고와 영재학교로 진학하는 새로운 길이 되어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즈음 교육청에서도 교육원 혹은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면서 영재교육원 혹은 과학고, 영재학교로의 진학지도가 체계화하였다.


 학교 밖 과학영재교육  


 창의력, 탐구력을 함양하고 학습동기를 자극하는 영재교육체계는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육과 연구라는 학습법은 한국창의재단, 대기업, 지자체,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KAIST 영재연구소는 1994년부터 과학고생들을 대상으로 탐구과제를 수행하고 발표를 하였다. 후에 삼성그룹에 이 제도를 제안하여 휴먼테크 논문대회를 출범시켰고 과학고 영재학교의 R&E로 출범하였다.


 중고생들이 팀으로 지도교사와 연구를 하고 심화학습을 진행하는 영재학교, 과학고, 과학중점학교에서 수행하며 시도 교육청, 대학, 창의재단이 주관하고 발표한다. 영재학교와 과학고 R&E 프로그램은 대학에서 URP라는 프로그램을 파생시켰다. KAIST와 창의재단은 학부생들이 연구주제를 제안하여 연구하고 발표를 진행한다.

 

 다양한 과학캠프와 멘토링 프로그램  


 KAIST가 처음으로 과학캠프를 실시한 것은 1983년 여름이다. 우리원은 과학영재 학부과정을 기획하였고 과학고 졸업생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과기대가 출범하고 영재연구소가 출범하면서 과학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캠프가 열리고 일반고생을 대상으로도 사이버 교육센터에서 방학중 과학캠프를 실시하였다. 과학고, 영재학교가 출범한 이후에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과학캠프가 열리기도 하였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는 2008년부터 청소년사사사업이라는 멘토링 사업을 시작하였다. 우수한 중고생을 대상으로 선정하여 6개월 동안 개인 지도와 연구실 방문, 진로지도, 여름 과학캠프를 거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초등생들에게 지역 과학기술자들이 첨단 산업기술을 소개하는 교육프로그램과 지식재산리더를 특허전략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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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성 경진대회  


 과학전람회는 1949년부터 시작하여 올해 68회째29) 시행된 과학행사로서 과학탐구력을 함양하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 및 환경, 산업 및 에너지 분야로 나누어 시행한다. 


 과학고의 실험에 동기를 부여하고자 고심하던 화학기업인들은 화학탐구프런티어페스티벌을 제안하여30) 고교 화학교실을 좀 더 활성화하도록 하였다. 영재학회와 대전시는 대전시에서 진행된 창의력 대회를 세계대회로 확대 개편하여 운영하였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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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jd@kaist.ac.kr

2) 1970년 우리나라 대학원 정원 1600명이나 졸업생은 석사 225명, 박사 14명이 전부였다.

3) 제1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사업(1962-1966)을 추진. 1967.4 과학기술처 설치. 2차 1967-71년이고 3차는 1972-6이다.

4) J.F. Kennedy(1964) 암살된 후 대통령이 된 L.B. 죤슨은 ‘위대한 사회’를 위한 ‘기술 마샬 플랜’을 가동함.

5) 1965.5 한미정상(박정희, 죤슨)회담에서 합의.  

6) 1955-1975 베트남전쟁. 1965-75.4.30 한국군의 참전

7) 1966.2 한미 양국은 바텔 조사단 보고서를 바탕으로 협정서 서명하여 설립

8) 1969.6.15. 한미 공동재정 지원사업으로 고급과학기술인력양성사업 약정 

9) 1970.5.11. 김학렬 장관 6백만 달러 교육차관 요청. 정부 예산 5억5천만 원 

10) 1970.7.17. Fredrick E Terman, Franklin Long, Thomas H. Martin, D.onald H. Benedict, wjdrmsah 1971.1.5. 6개 학과 제안

11) 한국과학원법 1970.7.16. 국회 통과, 8.7 공포. 12.15 시행령 공포. 1971.2.16. 이상수 교수 초대원장 임명장 수여 (1.27)

12) 분야별로 정근모, 김길창, 윤덕용, 유두영, 심상철, 나정웅 교수와 전학제, 전무식 교수들이 합류하였다. 

13) http://www.gs.hs.kr 

14) 이상수 외, 1982 과학기술영재 양성을 위한 교육체제 확립에 대한 연구

15) 1984.7 과학기술원 첫 하계 여름캠프

16) 영재학회 설립, 1991. 회장 이상희, 2대 김언주 2002, 3대 이군현 2004, 4대 박인호 2007, 5대 박경빈 2012, 6대 최호성 2018

17) 1995.9 조기 진급 및 조기졸업제에 관한 제도 시행령 공포로 조기입학, 월반, 조기졸업 등이 가능해짐. 초중등 교육법 제27조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을 규정하고 있다. 

18) 1997 과학기술부가 대학부설 영재교육원 사업을 시작함. 2005년 25개 지정

19) 1984.12.31. KIT 설립, 학사과정 신설 1985.11 530명(남 476, 녀 54) 선발 

20) 1986 경기과학고 2,3년 수료 및 졸업생을 받아들였다. 

21) 1990 전체 신입생을 무학과로 일괄 선발하였다.

22) 1995 서류전형과 면접시험으로 선발하다. 

23) 1999.12.28. 영재교육진흥법  2002.1 공포 

24) 2002.5.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  과학영재학교 및 교육원 지정 운영 

25) 2013.6 북한의 사이버테러 이후 정보보호영재원 설치,. 2021 기준 서울여대, 건양대, 대구대, 목포대, 2022 부경대에 설치  

26) 2009 특허청과 포스텍, KAIST 업무협약으로 설치 중1-3 대상으로 운영 

27) 한양대, 서울교육대 등에 설치 운영

28) 1995.5 대통령 보고, 1998.7 9개 지정, 2000.11 6개센터 추가지정 

29) 2022.11.9.-27 제68회 전국과학전람회 전시 국립중앙과학과 미래기술관 3층, 9.1 원서접수, 심사 9.19-10.6, 2차심사 10.25-27, 결과발표 11.8, 시상식 11.8 

30) 2004~2022 LG화학, 삼성토탈, 롯테케미칼, 한화케미칼, SK에너지, 금호석유화학(후에 참여) 

31) 2003~2017 세계창의력경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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