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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길 [2023년 영재키움프로젝트 수기 공모전 교육부장관상(교사) - 곽윤범 / 남문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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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 Story 작성일23-12-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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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7.] 


함께 걷는 길


곽윤범

남문중학교 교사




 지훈이가 춤을? 


 “나는 새삥♬ 모든 게 다 새삥♬ 보세 옷을 걸쳐도♬” 작년 10월 21일은 멘티 학생인 지훈이가 드디어 무대에서 춤을 추던 날이었다. 학교 축제 역사를 돌이켜보면 남자 학생이 춤을 추는 게 5년 만이라고 했다. 리허설을 지켜보던 지훈이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지훈이가 맞는 거냐며 의아해했다.

 

 축제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다. 지훈이가 축제 때 춤을 춘다고 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었다. 지훈이를 아는 사람이면 모두 다 놀랐을 것이다. 지훈이는 예전에 정말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으니까.


 첫 만남  


 그런 지훈이와의 만남은 코로나로 한참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2020년에 시작되었다. 지훈이는 내가 수업을 하지 않는 반이어서 어떤 학생인지 전혀 몰랐다. 유독 담임선생님께서 소심하고 착한 지훈이를 많이 챙겨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사정이 있는 학생인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운영하던 동아리인 ‘프로그램 코딩반’에 지훈이가 들어오게 되었고 정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선생님 저 코딩 좋아해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날이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다.


 함께한 성장  


 지훈이는 코딩을 좋아하고 열심히 했다. 1년간 3종류의 컴퓨터 언어를 학습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성실했다. 사실 나는 과학교사라서 지훈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지훈이가 파이썬, C언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적지 않게 당황했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나는 저녁식사 후에 컴퓨터에 앉아서 새로 산 책으로 파이썬과 C언어 등을 공부했는데, 사실 블록 코딩이나 앱 제작 프로그램을 배워보고 가르쳐 본 경험이 있어서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새로운 개념부터 차근차근 해나갔고 지훈이를 가르쳐 줄 정도까지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지훈이와 방과 후에 함께 공부도 했는데, 지훈이가 더 빠르게 배워서 오히려 나를 알려 주기도 했다.


 추억  


 재작년 이맘때 즈음이 생각이 난다. 격주로 원격수업을 진행하면서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2학년 학생들을 어떻게 수업으로 끌어들일지 고민하다가, 원격수업 중에 몰래 게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원격수업이라 집중을 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딴 생각을 하는 정도는 예상했지만 게임을 한다고 하니 많이 놀랐고 걱정도 되었다. 동아리 시간에 지훈이한테 원격 수업 시간에 친구들이 어떤 게임을 하냐고 물어봤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로블록스’라는 게임을 한다고 했다. 사실 며칠간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항상 수업에는 자신이 있었고 원격수업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구성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의 수업에 아이들이 이렇게 딴짓을 한다고 듣고나니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문득 지훈이가 “로블록스 월드를 만들어서 거기 안에서 수업해 보는 건 어때요?” 라고 말했다. 오히려 수업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해보자고 했다. 생각해 보니까 한 단원이 끝나고 나서 복습하고 정리하는 부분에서 퀴즈를 항상 제공했었는데 로블록스 안에서 하면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공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퀴즈를 푸는 형식과 틀은 그 때 당시에 유행했던 오징어 게임을 이용했다. 지훈이와 나는 바로 책을 구매해서 단 2주 만에 로블록스 월드를 만들었다. 수업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2학년 아이들 중에 수업 시간에 전혀 참여조차 하지 않던 친구까지 전원 참여를 했고 퀴즈를 풀기 위해서 책을 다시 보고 복습하는 모습까지 보게 되다니 감격이었다. 2학년 학생들은 누가 만들었냐고 궁금해했고 그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지훈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조작하는지,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모두 지훈이가 설명했는데 교실에서 항상 말이 없던 지훈이가 이제는 아니었다.


 발전, 그리고 계속되는 인연 


 작년에 지훈이하고 프로젝트를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던 중에 우연하게 동아리 친구 중에 ‘쌍별 귀뚜라미’ 사육장을 운영하는 친구를 알게 되었고 농장에 가게 되었다. 나는 2017년도부터 영재 키움에 참여했는데 처음 함께한 멘티 학생이 벌써 대학생이 되었다. 그 학생과는 동아리 회장과 지도 교사로 만나 식용 곤충을 연구했었고 각종 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그 학생이 졸업하고 나서는 곤충과의 인연도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또 곤충과 인연이 생겼다. 동아리 친구들과  프로젝트의 주제를 정하게 되었는데, 지훈이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귀뚜라미를 키우기 위해서는 생육 단계별로 구분을 해줘야 하는데, 농장에서 키우는 귀뚜라미 개체 수는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이를 분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는 친구 아버님을 보면서 생육 단계별로 자동으로 분리가 되면서 습도에 따라서 물도 자동으로 주는 사육장을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를 했고, 여러 과정을 거쳐서 주제를 다듬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가정에서 사육 가능한 귀뚜라미 사육 키트 제작’을 목표로 탐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탐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봉사활동도 하기로 정했는데, 지역축제에 곤충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귀뚜라미를 키울 수 있는 키트를 나누어 주기로 하였다. 귀뚜라미 사육 키트는 살아있는 귀뚜라미와 습도 유지를 위한 오아시스, 그리고 은신처인 계란판으로 구성이 되었는데 여기에 귀뚜라미를 설명할 수 있는 안내지도 제작했다. 양주에서 가장 큰 축제인 ‘천일홍 축제’에 부스를 배정받고 2일간 귀뚜라미 사육키트 체험을 진행했다. 2일간 지훈이가 체험을 하러 온 친구 또는 동생들에게 귀뚜라미에 대해 알려주었고 2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말도 잘하고 대화 중에 농담도 섞어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훈이가 많이 달라졌구나 느꼈다.


 함께 걷는 길 


 올해 지훈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올해 정보컴퓨터 부전공 연수를 통해 정보컴퓨터 교사가 되었다. 우리는 관심 분야도 같았다. 나는 지훈이와 함께 활동하면서 컴퓨터 언어를 스스로 공부했던 게 대학원 전공으로도 이어졌다. 결국 ‘AI인공지능융합교육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지훈이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특성화고등학교에 입학해‘메이커창작과’에 입학하였다. 


 참 인연이 이상하다. 내가 이쪽 분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하게 될지도 몰랐지만, 지훈이가 축제에서 춤을 출 줄이야. 우리의 변화와 성장은 이제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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